고이케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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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이케 겐지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하마마츠 상업고등학교와 센슈 대학을 거쳐 1961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 1974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난카이 호크스 시절 4번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4년 연속 베스트 나인, 5년 연속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1964년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며 시리즈 기술상을 수상했고, 1968년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1974년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하며, 난카이, 다이에, 대만 CPBL 등에서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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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겐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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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선수 이름 | 고이케 겐지 |
원어 이름 | Kenji Koike |
일본어 이름 | 小池 兼司 |
로마자 표기 | Koike Kenji |
가나 | こいけ けんじ |
한자 | 小池 兼司 |
출신 국가 | 일본 |
출신지 |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
생년월일 | 1939년 2월 5일 |
사망일 | 알 수 없음 |
키 | 169cm |
몸무게 | 70kg |
수비 위치 | 유격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프로 입단 연도 | 1961년 |
드래프트 순위 | 알 수 없음 |
첫 출장 | 1961년 5월 13일 |
마지막 경기 | 1974년 9월 26일 |
획득 타이틀 | 알 수 없음 |
계약금 | 알 수 없음 |
연봉 | 알 수 없음 |
선수 경력 | |
소속 구단 | 난카이 호크스 (1961 ~ 1974) |
선수 사진 파일명 | 알 수 없음 |
사진 사이즈 | 알 수 없음 |
사진 설명 | 알 수 없음 |
감독 및 코치 경력 | |
감독 및 코치 경력 | 난카이 호크스 (1975 ~ 1985) |
감독 및 코치 경력 | 싼샹 타이거스 (1994) |
감독 및 코치 경력 | 허신 웨일즈 (1997) |
감독 및 코치 경력 | 싼샹 타이거스 (1998) |
감독 및 코치 경력 | 오사카 호크스 드림 여자 경식 야구부 |
종신 명예 감독 | 알 수 없음 |
기타 정보 | |
출신 고등학교 |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쓰 상업 고등학교 |
출신 대학교 | 센슈대학교 |
2. 선수 경력
하마마츠 상업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6년 봄의 고시엔에 유격수로 출전했지만, 2회전에서 현립 아마가사키 고등학교의 에이스 이마즈 미츠오에게 막혀 패했다.[1]
고등학교 졸업 후 1957년 센슈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재학 중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3학년이던 1959년 대학 일본 선수권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가나자와 히로시와 안도 모토히로의 투수진, 키지 후미오, 곤도 아키히토, 토쿠타케 사다유키를 타선의 주축으로 하는 와세다에 아쉽게 패했다. 리그 통산 85경기 출장, 272타수 69안타, 타율 .254, 2홈런, 28타점, 베스트 나인(유격수) 3회 수상. 대학 동기로는 에이스 사카이 쇼지 (3학년 중퇴)・야마모토 효고 (사카이 중퇴 후의 주전 투수), 1년 후배로 호리코메 모토아키가 있다.
고이케 겐지는 대학 졸업 후 1961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2]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5월 13일 다이마이전(고라쿠엔)에서 9회 말 3루수로 첫 출장했고, 다음 날 8번 타자·3루수로 첫 선발 출장하여 2회 말에 가네야마 가쓰미를 상대로 첫 안타를 기록했다. 그 해 21일 긴테쓰전(오사카)에서 첫 타점을, 7월 6일 다이마이전(오사카)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다.[3] 8월에는 히로세 노리토시가 중견수로 이동하면서 유격수 자리를 굳혔고, 쓰루오카 가즈토가 1939년에 기록한 10홈런에 이어 1950년 가게야마 가즈오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9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 노무라 이사무에 의해 갱신될 때까지 구단 신인 최다 홈런 기록(2리그제 이후)과 타이기록이었다.[3]
1962년 처음으로 규정 타석 (30위, 타율 .230)에 도달했고, 견실한 수비와 당겨치는 타격으로 1960년대 난카이의 3연패를 포함해 4번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63년에는 113개의 병살타로 야마다 기요시가 가지고 있던 파·리그 유격수 병살타 기록을 깼으며, 같은 해 22개의 홈런을 날리며 난카이 400피트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4년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고, 1964년부터 1968년까지 5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했다.[2] 1964년 한신과의 일본 시리즈에서 23타수 8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며 시리즈 기술상을 수상했다.
1968년 7월 18일 한큐전(오사카)에서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유격수 연속 수비 기회 무실책 218회라는 당시 일본 기록을 수립했다. 올스타전 3차전(니시노미야)에서 에가와 도요로부터 3점 홈런, 시마다 겐타로로부터 끝내기 3루 강습 안타를 날려 MVP를 수상했다.[4]
1971년 7월 15일 니시테쓰전(헤와다이)에서 통산 100홈런을 기록했다. 1972년 사노 요시유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1974년 4월 17일 태평양전(헤와다이)에서 통산 1500경기 출장을, 5월 5일 롯데전(오사카)에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프로 1년차에 3루수, 2루수로도 기용되었고, 말년에도 2루수로 2경기에 출전했지만, 그 외에는 유격수로 뛰었다. 같은 해 은퇴했다.[2]
2. 1. 프로 입단 전
하마마츠 상업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6년 봄의 고시엔에 유격수로 출전했지만, 2회전에서 현립 아마가사키 고등학교의 에이스 이마즈 미츠오에게 막혀 패했다.[1]고등학교 졸업 후 1957년 센슈 대학에 진학하여 도토 대학 야구 리그에서는 재학 중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3학년이던 1959년 대학 일본 선수권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가나자와 히로시와 안도 모토히로의 투수진, 키지 후미오, 곤도 아키히토, 토쿠타케 사다유키를 타선의 주축으로 하는 와세다에 아쉽게 패했다. 리그 통산 85경기 출장, 272타수 69안타, 타율 .254, 2홈런, 28타점, 베스트 나인(유격수) 3회 수상. 대학 동기로는 에이스 사카이 쇼지 (3학년 중퇴)・야마모토 효고 (사카이 중퇴 후의 주전 투수), 1년 후배로 호리코메 모토아키가 있다.
2. 2. 난카이 호크스 시절 (1961년 ~ 1974년)
고이케 겐지는 대학 졸업 후 1961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하여[2]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5월 13일 다이마이전(고라쿠엔)에서 9회 말 3루수로 첫 출장했고, 다음 날 8번 타자·3루수로 첫 선발 출장하여 2회 말에 가네야마 가쓰미를 상대로 첫 안타를 기록했다. 그 해 21일 긴테쓰전(오사카)에서 첫 타점을, 7월 6일 다이마이전(오사카)에서 첫 홈런을 기록했다.[3] 8월에는 히로세 노리토시가 중견수로 이동하면서 유격수 자리를 굳혔고, 쓰루오카 가즈토가 1939년에 기록한 10홈런에 이어 1950년 가게야마 가즈오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9홈런을 기록했다. 이는 2022년 노무라 이사무에 의해 갱신될 때까지 구단 신인 최다 홈런 기록(2리그제 이후)과 타이기록이었다.[3]1962년 처음으로 규정 타석 (30위, 타율 .230)에 도달했고, 견실한 수비와 당겨치는 타격으로 1960년대 난카이의 3연패를 포함해 4번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63년에는 113개의 병살타로 야마다 기요시가 가지고 있던 파·리그 유격수 병살타 기록을 깼으며, 같은 해 22개의 홈런을 날리며 난카이 400피트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4년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고, 1964년부터 1968년까지 5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했다.[2] 1964년 한신과의 일본 시리즈에서 23타수 8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며 시리즈 기술상을 수상했다.
1968년 7월 18일 한큐전(오사카)에서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고, 유격수 연속 수비 기회 무실책 218회라는 당시 일본 기록을 수립했다. 올스타전 3차전(니시노미야)에서 에가와 도요로부터 3점 홈런, 시마다 겐타로로부터 끝내기 3루 강습 안타를 날려 MVP를 수상했다.[4]
1971년 7월 15일 니시테쓰전(헤와다이)에서 통산 100홈런을 기록했다. 1972년 사노 요시유키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1974년 4월 17일 태평양전(헤와다이)에서 통산 1500경기 출장을, 5월 5일 롯데전(오사카)에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프로 1년차에 3루수, 2루수로도 기용되었고, 말년에도 2루수로 2경기에 출전했지만, 그 외에는 유격수로 뛰었다. 같은 해 은퇴했다.[2]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난카이, 다이에를 거쳐 2군 코치(1975년), 2군 코치(1976년 ~ 1977년), 1군 코치(1978년 ~ 1979년), 1군 수비·주루 코치(1980년), 2군 수비 코치(1981년), 2군 헤드 겸 내야 수비 코치(1982년), 2군 감독(1983년 ~ 1985년)을 역임했다.[2] 편성 부장, 스카우트를 거쳐 1992년에 퇴단했다.[2] 그 후 오사카부 야오시의 소년 야구팀에서 지도했고, 대만 CPBL의 싼샹 타이거스 타격 코치(1994년, 1998년), 허신 웨일스 타격 코치(1997년)를 역임했다.[2] 2012년부터 오사카 호크스 드림의 시니어 어드바이저, 2014년 4월부터 오사카 호크스 드림 여자 경식 야구부 총감독, 2020년 2월부터 오사카 호크스 드림 종신 명예 감독으로 취임했다.[5]
4. 수상 및 타이틀 경력
4. 1. 수상
고이케 겐지는 베스트 나인에 4회(1963년 ~ 1966년) 선정되었다. 일본 시리즈 기능상을 1회(1964년) 수상했고, 올스타전 MVP를 1회(1968년 제3차전) 수상했다.4. 2. 개인 기록
고이케 겐지는 1964년부터 1968년까지 5회 올스타전에 출장했다.1961년 5월 13일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즈와의 7차전(고라쿠엔 구장)에서 9회말 3루수로 첫 출장했으며, 다음 날인 5월 14일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즈와의 9차전(고라쿠엔 구장)에 8번 · 3루수로 첫 선발 출장했다. 같은 경기 2회말에 가네야마 가쓰미로부터 첫 안타를 기록했고, 5월 21일 킨테츠 버팔로와의 6차전(오사카 스타디움) 4회말에 글렌 미켄즈로부터 첫 타점을 기록했다. 7월 6일 마이니치 다이에이 오리온즈와의 14차전(오사카 스타디움)에서는 9회말 아나부키 요시오의 대타로 출장하여 딕 디사로부터 2점 홈런을 쳐 첫 홈런을 기록했다.
1968년 7월 18일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15차전(오사카 스타디움)에 7번 · 유격수로 선발 출장하여 통산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이는 역대 134번째 기록이다. 1971년 7월 15일 니시테츠 라이온즈와의 16차전(헤이와다이 구장) 9회초에 고토 기요시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100홈런(역대 64번째)을 달성했다. 1974년 4월 17일 태평양 클럽 라이온스와의 전기 3차전(헤이와다이 구장)에 7번 · 유격수로 선발 출장하여 1500경기 출장(역대 46번째)을 달성했고, 같은 해 5월 5일 롯데 오리온스와의 전기 5차전(오사카 스타디움) 7회말에 이케다 시게키로부터 중전 안타를 기록하며 1000안타(역대 86번째)를 달성했다.
5. 상세 정보
5. 1. 등번호
고이케 겐지는 1961년부터 1974년까지 등번호 2번을 사용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는 63번, 1979년부터 1980년까지는 73번, 1981년부터 1982년까지는 81번을 사용했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그리고 1997년에는 70번을, 1998년에는 87번을 사용했다.5. 2. 연도별 타격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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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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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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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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